책소개
1799년 루트비히 티크가 편집해서 출판한 ≪예술의 친구들을 위한 예술에 관한 판타지≫는 형태나 내용으로 볼 때 2년 전에 익명으로 출판된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의 후속편이다. 전편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마지막 부분에서 허구의 수도사는 만약 이 시도가 “아주 불만스럽지만 않다면 혹시 2부로 이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가 커다란 성공을 거두자 당연히 후속편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의 원래 저자였던 바켄로더는 1798년 2월 13일 25세의 나이로 죽었고, 친구인 티크가 이 책의 완성을 떠맡게 되었다. 그래서 티크는 바켄로더의 유고를 모으고 자신의 생각을 많이 보충해 공동의 책으로 출판했다.
≪예술에 관한 판타지≫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회화에 관한 글들이고, 2부는 음악에 관한 글들이다. 그러나 차이는 글의 소재가 되는 대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부분의 정신에도 있다. 회화에 관한 글들은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에서 예술을 관찰하는 조화로운 성격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음악에 관한 글들은 모두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에서 유일한 음악에 관한 글인 음악 지휘자 베르크링거의 이야기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이 이야기가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다른 이야기들과 구분되듯이, ≪예술에 관한 판타지≫에서 음악에 관한 글들도 앞에 나온 회화에 관한 글들보다 훨씬 많은 문제점들을 던지고 있다. 회화에 관한 글들은 어조나 내용에서 수도사의 글에 속하고, 음악에 관한 글들은 마음이 갈라진 음악 지휘자에 의해 직접 서술된다.
바켄로더와 티크에 따르면 예술을 참되게 관찰하는 것은 그렇게 많은 사전 지식이나 신중한 평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풍부한 감정이 예술 작품 앞에서 열려서 자신에게 작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예술은 느낌으로 경험하는 것이지, 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작곡에 관해 객관적인 지식이나 예술의 기술이나 수단을 모으는 것이나, 미술 작품을 내용이나 완성도에 따라 판단을 내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대신 그 작품이 자기 자신의 마음과 소통하는 느낌이 일어날 때까지 작품에 있는 그대로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예술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들어 있다.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와 ≪예술에 관한 판타지≫는 획기적인 의미를 가진 작품이고, 그 새로운 예술 이념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술과 감정이 일치한다는 생각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열어 주었으며, 19세기 중반까지 예술 창작을 규정했다. 귀족 사회로부터 예술의 독립과 음악의 신격화는 호프만(Hoffmann)과 쇼펜하우어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리하르트 바그너의 작품에서 그 정점에 이른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시민 사회의 전문적인 문화 영역에서 느낄 수 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아마도 예술에 신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그런 정신이 예술에 대해 그렇게 깊은 의문을 동시에 제기함으로써, 그 정신으로 이제 막 시작된 예술에 대한 숭배의 반작용을 미리 말해 버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200자평
≪예슬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에 이은 바켄로더와 티크의 낭만주의 예술 이론서. 이들은 예술은 의미와 이성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감정으로 받아들여 소통하고 몰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술을 종교의 위치로 끌어올린 낭만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만난다.
지은이
빌헬름 바켄로더(Wilhelm Wackenroder) · 루트비히 티크(Ludwig Tieck)
루트비히 티크와 빌헬름 하인리히 바켄로더는 베를린 출신으로 동갑내기였다. 티크는 1773년 3월 31일에 그리고 바켄로더는 6월 13일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두 사람은 아주 친하게 지냈는데, 티크의 아버지는 밧줄을 만드는 장인(匠人)이었고, 바켄로더의 조상은 신학자, 교수, 법률가와 같은 학자들이었다.
바켄로더의 아버지는 규칙을 강조하는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송가(頌歌) 시인이었던 람러(Karl Wilhelm Ramler, 1725∼1798)와 친했는데, 아들인 바켄로더는 그로부터 문학의 기본 개념들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점차 그로부터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아들의 예술적 성향이 낯설었던 아버지는 그에게 철저하고도 광범위한 교육을 받도록 했다. 이와 함께 성악과 바이올린 그리고 작곡을 공부하는 데도 동의했다. 그러나 이것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였다. 아버지는 그가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다. 아들을 엄하게 교육해서 그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대학을 다니지 못하게 하고 베를린에서 1년간 배석 판사한테서 교육받게 했다. 할레(Halle)와 괴팅겐에서 이미 대학 공부를 하고 있던 티크와 헤어지게 된 것도 바켄로더에게는 고통스런 일이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가 출판되고 1년 후인 1798년 2월 13일 바켄로더는 장티푸스로 죽었다.
루트비히 티크는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어 박식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계몽주의 시대나 질풍노도 시대의 최신 문학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고, 어머니로부터는 성경과 찬송가 그리고 동화의 세계에 대해 들으면서 자랐다.
1796년 티크는 계몽주의자 니콜라이의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단편을 썼으나, 바켄로더의 영향으로 계몽주의와 결별하고 중세 이후의 민담과 동화를 모아서 ≪페터 레브레히트의 전래 동화≫(1797)를 내놓았다. 1796년에 대부분을 바켄로더가 집필하고 자신이 가필했던 예술 평론집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를 발표한다. 그리고 1798년 2월 친구인 바켄로더가 죽은 후 그의 유고를 모으고 자신의 글을 합쳐서 ≪예술에 관한 판타지≫를 1799년에 내놓았다. 1798년에 발표한 ≪프란츠 슈테른발트의 방랑≫은 티크의 대표작으로 그해 죽은 친구 바켄로더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는 ‘예술가 소설’이다.
1799년에는 예나(Jena)로 이전해 슐레겔 형제와 노발리스(Novalis, 1772∼1801), 철학자 셸링(Schelling) 등과 친하게 교류하면서 전기 낭만주의의 중요한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노발리스가 1801년 죽은 후 티크가 드레스덴으로 옮기자 그 세력도 분산되었다.
중년기로 접어들자 ‘낭만적인 마법’ 사용을 멀리하고, 현실적 시민의 삶에 관심을 돌려 ‘교육적인 리얼리즘’으로 나아갔다. 이 시기의 티크는 낭만적인 감정의 고양을 피하고, 소박하고 친밀한 것을 더 좋아했다. 이것은 소시민적 생활 양식에 바탕을 둔 ‘비더마이어 시기’의 정서였고, 그 후의 19세기 리얼리즘으로 이행해 간 것이다.
만년에는 다시 고향인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통풍(痛風)으로 몸이 불편해 대부분 집에서 지냈고, 주위의 가족이 이미 모두 죽었기 때문에 외롭게 살았다. 티크를 대단히 높게 평가했던 빌헬름 4세는 그를 1842년에 새로 설립된 프로이센 학술원과 예술원의 창립회원으로 임명했다. 만년에 티크는 주로 연극에 관계된 일을 하면서, 특히 셰익스피어를 소개하는 데 전력을 다한 후 1853년 80세의 나이로 죽었다.
옮긴이
임우영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독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교수로 있으며, 한국괴테학회 회장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기획조정처장과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학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대학생을 위한 독일어 1, 2≫(문예림, 공저), ≪서양문학의 이해≫(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공저), ≪세계문학의 기원≫(한울아카데미, 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는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지식을만드는지식), 오토 바이닝거의 ≪성과 성격≫(지식을만드는지식),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낭만주의≫(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공역), 라테군디스 슈톨체의 ≪번역이론 입문≫(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공역), 니콜라스 보른의 ≪이별연습≫(월인), ≪민중본. 요한 파우스트 박사 이야기≫(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미학연습. 플라톤에서 에코까지. 미학적 생산, 질서, 수용≫(동문선, 공역), ≪괴테의 사랑. 슈타인 부인에게 보낸 괴테의 편지≫(연극과 인간)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괴테의 결정적인 시기 1775−“릴리의 시”에 나타난 스물여섯 괴테의 고민>(2015), <흔들리는 호수에 비춰보는 자기 성찰. 괴테의 시 <취리히 호수 위에서>>(2014) <괴테의 초기 예술론을 통해 본 ‘예술가의 시’ 연구. <예술가의 아침 노래>를 중심으로>(2013), <‘자기변신’의 종말?: 괴테의 찬가 <마부 크로노스에게>>(2011), <“불행한 사람”의 노래: 괴테의 찬가 <겨울 하르츠 여행>(1777)>(2008), <영상의 문자화.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단편소설에 나타난 ‘겹상자 문장’ 연구>(2007), <괴테의 ≪로마 비가(Römische Elegien)≫에 나타난 에로티시즘>(2007),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에 나타난 ‘체념(Entsagung)’의 변증법>(2004), <괴테의 초기 송가 <방랑자의 폭풍 노래> 연구. 시인의 영원한 모범 핀다르(Pindar).>(2002), <괴테의 초기 시에 나타난 신화적 인물 연구>(2001), <새로운 신화의 창조−에우리피데스, 라신느, 괴테 그리고 하우프트만의 ≪이피게니에≫ 드라마에 나타난 그리스의 ‘이피게니에 신화’ 수용>(1997) 등이 있다.
차례
예술의 친구들을 위한 예술에 관한 판타지
1부
1. 옛 독일 예술가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알브레히트 뒤러와 그의 아버지를 예로 들어서
2. 어느 이탈리아 책에서 번역한 이야기
3. 라파엘로의 초상화
4.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5. 성 베드로 대성당
6. 바토(Watteau)의 그림
7. 라파엘로가 그린 어린이 모습들
8. 공정함과 절제 그리고 관용에 대한 몇 마디
9. 색채(色彩)
10. 예술의 영원함
2부 요셉 베르크링거의 예술에 관한 몇몇 글들을 부록으로
머리말
1. 어떤 벌거숭이 성자에 관한 경이로운 동방의 동화
2. 음악 예술의 기적
3. 각각의 예술에서 상이한 장르와 상이한 종류의 교회 음악에 대해서
4. 요셉 베르크링거의 편지에서 발췌한 글
5. 소리 예술의 고유한 내적 본질과 오늘날 기악곡의 심리학
6. 요셉 베르크링거의 편지
7. 비음악적인 관용
8. 음(音)들
9. 교향곡
꿈
부록
서문
목차
독자들에게 드리는 후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천상의 음악이 충만한 소리와 사랑을 자극하는 화음으로 우리의 가슴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 주기 위해 내가 어떤 말을 선택해서 표현해야 하는가? 그 음악은 직접 천사를 동반하고 영혼으로 들어와 천상의 숨결을 내쉰다. 오, 당장에 행복했던 모든 기억들이 어떤 한순간으로 다시 흘러들어 가, 초대받은 사람의 모든 고귀한 감정과 모든 위대한 생각을 향해 펼쳐진다! 신비한 씨앗처럼 소리들이 우리의 뿌리에 재빨리 울리면,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불같은 힘으로 재촉하듯 밀려온다. 그리고 그 순간 수없이 많은 놀라운 꽃들이 핀 작은 숲은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색을 띠면서 흔들리고, 우리의 어린 시절과 보다 먼 과거가 그 잎들과 꼭대기 위에서 장난을 치며 논다. 이때 꽃들은 흥분해서 서로 다투듯 색에 색이 더해지고 광채에 광채가 더해지면서, 비처럼 쏟아지는 반짝이는 모든 빛들이 새로운 광채와 새로운 빛들을 유혹해 낸다. 마음속 깊은 곳은 즐거움으로 변해서 ‘뭔가’로 흘러들어 가 변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뭐라고 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그것 자체가 가장 행복한 감정이고, 그 모든 것이다. 오, 누가 여기서 아직 삶의 궁핍함을 되돌아볼 수 있겠는가? 누가 부드럽고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우리를 저편으로, 저편으로 이끌어 주는 그 강물을 기꺼이 뿌리치고 따라가지 않겠는가?